올림픽: 태권도 국가대표에서 난민으로…포기하지 않은 '금메달'의 꿈 - BBC News 코리아 (2024)

올림픽: 태권도 국가대표에서 난민으로…포기하지 않은 '금메달'의 꿈 - BBC News 코리아 (1)

사진 출처,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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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소니아 올렉시
  • 기자, BBC 스포츠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태권도 국가대표였던 파르자드 만수리는 흰색 전통 옷과 무늬가 그려진 조끼 차림으로, 검정색 마스크를 쓴 채 조국의 국기를 들고 당당히 입장했다.

코로나19로 텅 빈 관중석과 수백만 명의 전 세계 TV 시청자들 앞에서 경기장 안에서 걸어 나올 때만 해도 만수리는 자신이 조국을 떠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과 다른 아프간 국민 수만 명이 탈레반 정권을 피해 외국행 비행기에 올라타고자 몰리면서, 카불 공항에서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질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공항 자살 폭탄 테러로 인한 동료 선수들의 죽음을 애도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난민촌에서 가족 5명과 한 방에서 함께 지내다 어느 날 혼자 영국으로 향하게 될 줄도 예상하지 못했다.

만수리는 BBC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살던 집과 조국을 떠났을 때 내가 가진 옷가지라고는 스포츠 장비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제 목표는 오직 올림픽이었습니다. 그래서 파리 올림픽에 설 수 있도록 모든 걸 다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난민촌에서 임시로 어떻게든 훈련을 하고, 2년 넘게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으며, 비자 문제로 인해 수많은 대회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만수리는 결국 해냈다.

현재 22살인 만수리는 이번 2024 파리 올림픽에선 다른 국기 아래 서게 된다. 오는 7월 센 강을 따라 펼쳐질 개막식에서 만수리 위엔 올림픽 오륜기가 휘날릴 예정이다.

떠나온 국가와 자신을 환영해 준 새로운 국가의 응원을 바탕으로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의 ‘난민 올림픽 대표팀 선수단’ 소속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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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GETTY

도쿄 올림픽 당시 태권도 80kg급 16강전에서 패한 만수리는 런던에 사는 형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형은 단호한 목소리로 “아프간으로 돌아가지 마라.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영국 등이 참여했으며, 미국이 주도한 국제 연합군이 탈레반과의 협상을 마치고 아프간에서 철수하고 있었다. 강경한 이슬람 단체인 탈레반 정권이 수도 카불에서 물러난 지 20년 만의 일이었다.

도쿄에서 만수리가 태권도복을 입고 경쟁하는 동안, 미군의 철수와 줄어든 지원으로 아프간 군은 힘을 펴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에 탈레반은 급속도로 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전해 들었음에도 만수리는 형에게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전 우리나라 국기를 들고 입장했습니다. 안전해지는 그날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살 것입니다.”

“저는 아프간에 가야 합니다. 제가 런던으로 간다면 사람들은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국기를 들고 입장한 거네’라는 말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전 아프간으로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2주 만에 상황이 매우 심각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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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의 재점령과 함께 카불은 혼란으로 뒤덮였다. 근본주의자들의 귀환을 두려워한 국민들과 외국인들은 서둘러 외국으로 가는 항공편을 찾아 나섰다.

당시 19살이었던 만수리는 자신도 어서 그래야 한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됐다.

만수리는 “대사관들이 철수하고 모든 곳이 문을 닫았다”면서 “난 어떻게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어떻게 대화에 나갈 수 있을지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와 상의 후 ‘날 돕고 싶다면, 우린 외국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프간 군과 협력했던 아버지, 미국과 협력했던 형을 둔 만수리 일가이기에 사실 스포츠 말고도 아프간을 떠날 이유는 분명했다. 보복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만수리는 작은 가방 2개에 모든 스포츠 장비를 챙겼다. 여전히 허리 수술 후 회복 중인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자매와 조카까지 모두 함께 떠나기로 했다.

만수리는 “정말 정신없는 상황”이었다면서 “모두가 공항으로 들어가고자 했으나, 서류가 없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공항 밖에서 1~2일간 머물러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저기서 어린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들리고, TV에서 보셨겠지만 정말 상황이 나빴습니다.”

당시 상황을 담은 TV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비행기에 올라타고자 활주로에서 뛰고, 곳곳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는 등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일부는 비행기에 매달려 있다 떨어져 숨졌으며, 공항 밖에서 압사당해 숨진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침내 만수리와 가족들은 미군 수송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남은 친척들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은 없다.

그렇게 이들이 아랍에미리트에 도착한 다음 날, 카불 공항에선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나 민간인 170명과 미군 13명이 숨졌다.

사망자 중엔 만수리와 같은 태권도 동료였던 모하메드 얀 술타니(25)도 있었다.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둔 술타니는 가족들과 함께 외국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확보하고자 게이트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새 폭탄에 가까이 다가서게 된 것이다.

만수리는 “정말 친한 사이였다. 그런 친구를 잃었다”면서 “정말 슬펐다. 술타니도 아프간을 떠나고자 했다. 나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영국이 대피시킨 아프간 및 영국 국적자 약 1만5000명을 포함해 미국과 동맹국들은 2021년 8월 아프간에서 민간인 12만3000명 이상을 대피시켰다.

그러나 2022년 영국 의회가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아프간에서의 철수는 그야말로 “재앙”이었으며, 이러한 “잘못된” 철수 방식으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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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GETTY

한편 만수리는 수송기에서 내려 아프간 난민 수천 명을 수용하는 아부다비의 거대한 난민촌에 도착하게 됐다.

여전히 코로나19 제한 조치가 이어지던 상황이기에, 만수리와 가족들은 한 방에 모두 모여 지내야만 했다.

다시 프로 선수로서 경기에 나가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던 만수리는 어떻게든 훈련을 이어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난민촌 측에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 만수리는 머물던 방을 빠져나갈 수 있었으나, 난민촌을 벗어날 순 없었다. 이에 그는 달리기, 줄넘기 등을 하며 몸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패드, 보호장비 등은 온라인으로 주문해 난민촌으로 배송받았으며, 형을 파트너 삼아 발차기를 연습했다.

만수리는 “엄청 좋은 훈련은 아니었지만, ‘내 몸과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면서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유지라도 해야 했다. 태권도의 경우 장기간 훈련하지 않으면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운동선수의 식단을 지킬 방법도 찾아야만 했다.

난민촌에서 주로 제공되는 음식은 인도식으로, 매콤한 양념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러한 식단이 반복됐다. 그러다 코로나19 제한 조치가 해제되면서 만수리는 마침내 일주일에 3~4번은 바깥의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었다.

한편 이렇게 체력을 유지하던 만수리는 네덜란드, 아제르바이잔 등 여러 국가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다. 그러나 세계적인 수준의 태권도 선수 및 훈련 시설을 갖춘 영국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맨체스터 소재 ‘영국 태권도 센터’에서 제이드 존스, 비앙카 쿡, 브래들리 신든과 같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함께 훈련할 수 있다는 꿈을 꿨다.

문제는 ‘언제’였다.

만수리는 자신이 1~2개월 정도 난민촌에 머무르리라 생각했으나 8개월이나 지냈다. 마침내 2022년 5월, 영국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만수리는 한 번도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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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FARZAD MANSOURI

영국에 오긴 했으나, 만수리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잉글랜드 북서부 리버풀 출신의 코치와 함께 훈련하게 되면서 더더욱 자신이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수리는 웃으면서 “리버풀 억양이 정말 빠르다”면서 초반엔 훈련 시 코치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었으며, 경기에 나가서도 다른 소음과 함께 알아듣기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현재, 만수리는 영국 국기가 그려진 쿠션과 빈백으로 장식된 ‘영국 태권도 센터’에서 편안하게 영어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함께 훈련하는 이들 또한 만수리를 환영하며, ‘영국 태권도 센터’ SNS엔 다른 영국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만수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한편 영국으로 건너온 이후 그의 스포츠 인생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비자였다.

“난민 신분과 (적절히 구비하지 못하는) 서류 등으로 인해 ‘유럽 선수권 대회’ 등 여러 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놓쳤다”는 만수리는 현재 IOC와 ‘세계태권도연맹’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

같은 이유로 현재 다른 아들 한 명과 함께 미국에 살고 있는 부모님도 만수리의 경기를 보기 위해 파리에 올 수 없다. 다만 만수리는 런던에 사는 형만큼은 올 수 있길 바란다.

만수리의 경우 최근 영국 난민 여행 서류를 발급받아 여행이 한결 수월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3월엔 불가리아에 입국해 유럽 내 올림픽 예선에서 동메달을 얻어냈으며, 지난달엔 전 세계 난민 1억 명을 대표하는 ‘난민 올림픽 대표팀 선수단’에 선발됐다.

IOC는 지난 2016년부터 난민 선수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엔 11국 출신 선수 36명이 총 12개 종목에 나선다.

만수리는 “아부다비의 난민촌, 카불공항에서의 상황만 생각하면 더 열심히 훈련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전 제 조국을 위해, 영국과 ‘영국 태권도 센터’의 사람들, 코치님,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최고의 성과를 거두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족들을 위해서요…가족들은 절 위해 조국을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난민 대표팀 선수단을 위해서라도 좋은 결과를 얻어내고 싶습니다. 제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입니다.”

아직까지 난민 올림픽 선수단에서 메달이 나오진 않았으나, 만수리는 자신이 이 기록을 바꿀 수 있길 바란다.

“오직 금메달, 금메달을 바라고 있습니다.”

만수리는 위대한 꿈을 품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려는 이유는 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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